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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송년)답사 #진주 #청곡사서별전(西別殿)

 

작성자ㅣ조우/이제원/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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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소규모지만 눈에띄는 금단청이 있는
청곡사 서별전(西別殿, 서쪽에 있는 별도의 전각)은 조선 태조의 왕비(계비(繼妃) 신덕왕후(神德王后, *모친이 진주 강씨)의 위패 모신 전각으로, 대웅전 옆에 배치된 소규모 격식 있는 건물입니다.
* 특이하게 부모가 다 강씨 인데 부계는 곡산 강(康)씨이고, 모계는 진주 강(姜)씨. 양 강씨 성의 기원이 중국 상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네요.

태조의 첫 번째 부인인 신의왕후 한씨가 건국 전 사망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첫 국모. 신덕왕후가 승하(1396년)한 후 태조는 이듬해 그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청곡사를 원찰(願刹)로 삼으면서 건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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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최근 복원되었으며, 현재는 창건조인 도선국사, 신덕왕후, 임진왜란 당시 월아산성 수성한 김덕령 장군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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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별전 현판 글씨체는 행서(行書)에 가까운 초서체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초서체에 가까울수록 글자의 모양을 간략화했기 때문에 때로는 글을 쓴 본인도 모를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보통 전통적인 궁궐이나 관아, 불전의 전각의 현판같은 경우는 권위를 살리기 위해 해서체나 예서체 등 단정한 서체를 사용한 경우가 많은데 별개의 건물이라 유연함을 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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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이 눈에 확 들어박히는게 다르네 싶었는데 금(錦, 비단금)단청이더라구요.
수놓은 듯 정교하고 복잡한 문양을 건물의 모든 부재에 빈틈없이 그려 넣은 것 같던데, 주로 주불전이나 왕실 관련 전각에만 사용됩니다. 전에 갔던 광릉 봉선사(奉先寺, 세조의 능침사찰)도 이런 최고의 단청을 입혔더라구요.
주불전인 대웅전보다 더 화려하지 않나 싶더라구요. 아마 조선 초대 왕후를 기리는 장소라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주요 문양의 테두리나 특정 부위에 순도높은 실제 금박을 입히거나 금분을 바르는 기법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꽃살문은 강화도 정수사 같이 문살 자체를 꽃 모양으로 조각하거나, 서별전같이 살의 교차점에 따로 만든 꽃 조각을 붙이는 방식(소슬빗꽃살문) 등으로 제작된다고 합니다. 한옥의 창살은 절제된 직선미(격자문, 세살문)를 통해 단아함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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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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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원찰답게 자세히보면 일주문부터 테두리에 금단청이 칠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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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봉선사 사진, 특이하게 주불전(主佛殿)에 순한글로 현판이 쓰여져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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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도념가무념경(念到念家無念慶)
원래 처음에는 사찰전각 기둥에 주련(柱聯)이 없었는데 유교 영향으로 붙여지기 시작했고 보통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쓰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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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260여 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년)에야 비로소 왕비로 복권되어 종묘에 모셔졌다고 합니다.
태조는 그녀를 매우 사랑하여 도성 안(현재 서울 정동 영국대사관 일대)에 정릉(貞陵)을 크게 조성했습니다. 그러나 태조 사후 왕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은 그녀를 후궁으로 격하시키고, 1409년에 능을 도성 밖인 현재의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겼습니다.
현재 서울의 정동(貞洞)이라는 지명도 이곳에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몇년전에 가을 정동길은 과거와 근현대•예술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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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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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명전

또 1410년(태종 10년) 홍수로 인해 흙으로 만든 광통교가 무너지자 태종은 정릉을 장식하던 병풍석과 신장석을 사용하여 광통교의 교각과 받침돌로 사용했는데, 특히 일부 석재는 거꾸로 뒤집어 쌓았다고 합니다.
2005년 청계천 복원 사업 당시, 땅속에 묻혀 있던 광통교의 옛 석재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몇년전에 방문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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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통교(廣通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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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 중의 하나로 옛 사람들은 구름이란 천신이나 신령들이 타는 것일 뿐 아니라 만물을 자라게 하는 비의 근원이라 여겼다고 합니다. 또 세속을 벗어난 상서로운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서 용이나 학과 같은 동물과 함께 나타내는 예가 많았습니다.문화유산답사회 '우리얼'_사진_20260112_15.jpg

구름은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 중의 하나로 옛 사람들은 구름이란 천신이나 신령들이 타는 것일 뿐 아니라 만물을 자라게 하는 비의 근원이라 여겼다고 합니다. 또 세속을 벗어난 상서로운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서 용이나 학과 같은 동물과 함께 나타내는 예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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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을 수호하는 신장(神將)의 무기가 바로 금강저(金剛杵).
금강(金剛)은 다이아몬드처럼 무엇으로도 부서지지 않는 마음·지혜를 뜻하며, 금강저는 제석천·위태천이 들고 악마를 무찌르므로 번뇌를 깨뜨리는 지혜와 불교를 지키는 강력한 힘을 상징, 왕비를 수호하기 위해 제작된 최고 수준의 조각으로 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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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통교에서 수표교가기전 탑골공원 근처에 야ㅇ시대를 즐겨봐서 그런지 예전에 낭만주먹에서 국회의원까지 거친 김두한의 나와바리(구역)였던 ‘우미관(한국 최초의 상설 영화관)‘터도 스치고 지나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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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모습 우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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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太祖顯如 先順元顯敬神德王后康氏仙堂
조선태조현비 선순원현경신덕왕후강씨
顯如: 후궁의 봉작(칭호) 또는 사후에 부여된 시호
先: 먼저 돌아가신 분을 의미
順元顯敬: 순하고 원대한 덕을 지니고, 그 공덕이 드러나며 공경을 실천
神德王后: 사후 시호
仙堂: 선당, 보통 죽은 사람의 신위를 모신 집이라는 뜻인데 조선 왕실에서는 사찰에 위패를 봉안할때 '선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고려시대까지는 집에 제실이 없는 평민 가정에서 절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왕실도 장령전·봉원전에서 우란분재를 하기도 했는데 49재 위패같은 경우는 임시 의식용이라 재가 끝나면 소각했다고 합니다.
서별전 같은 영구 위패는 후손이 계속 기도·공양할 대상으로 절에서 호마기도 등 특별 의식으로 영구 보관한다고 합니다.
위패(位牌)가 집 모양(감실형)으로 생긴것은 유교에서 사후 세계에서 혼이 머무는 하나의 공간으로 본 것 같습니다. 지방(紙榜)은 제사 때마다 쓰고 태우는 임시 공간.
신주(神主, 위패)는 보통 밤나무로 만드는데, 규(竅)라고 하여 종묘같은 곳의 위패에는 몸체 중앙부나 아랫부분에 구멍을 뚫어 혼이 드나드는 통로가 만들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는 묘(廟)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도 혼령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국가의 안녕을 살필 수 있도록 배려한 구조를 가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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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전각 내부에는 서방정토의 주인인 아미타불을 주불로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것 같습니다.
고려 불화의 화풍을 살려 단청과 탱화를 조성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찰 단청보다 색채가 깊고 섬세하다고 합니다.
불상은 왜 안치하지 않았을까 싶을수도 있는데요, 불상(조각)과 탱화(회화)는 표현 방식이 다를 뿐, 본질적으로는 *부처의 몸과 가르침을 형상화한 동일한 예배 대상으로 보는 까닭에 두지 않을수도 있다고 합니다. 또 서별전같이 주로 돌아가신 분들의 영구 위패를 모시는 공간에는 불상 대신 벽면에 아미타불 탱화를 크게 봉안함으로써, 수많은 위패를 모실 수 있는 공간적 여유를 확보하고 동시에 모든 영가가 아미타불의 품에 안겨 있다는 느낌을 강조할 수 있다고 합니다.

*부처: 원래 산스크리트어 붓다(Buddha, 깨달은 사람)를 중국에서 음역하는 과정에서 불타(佛陀) 혹은 불(佛)로 줄여 사용하다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중세 국어(월인석보 등)에서 ‘부톄' 또는 '부체'로 표기, 마지막에 ‘부처‘로 정착되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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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최근인 2024년 3월에 내외부, 아미타불 탱화와 영구 위패들을 새롭게 단장•봉안했는데 탱화는 고려시대 화풍을 살려 제작했습니다.

대세지보살(우)은 주로 지혜를 상징하는 경전(책)이나, 때로는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상징인 연꽃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지혜' 그 자체를 상징하고, 대세지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고 극락왕생으로 이끄는 '지혜의 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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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 수인은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 극락세계를
9가지로 세분화) 중에 ‘*중품중생’ 같습니다.
*중품중생: 주로 유교적 도덕을 지키거나 세속의 선행을 쌓은 이들이 도달하는 단계.

평소 살생하지 않고 도덕적인 삶을 살았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웃에게 자애로운 '세속의 선한 사람'들이 가는 단계인데, 깊은 불교 수행이나 경전 공부는 부족할 수 있으나,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도리를 다한 이들이 아미타불의 원력으로 인도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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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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