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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유달산, 어둠에서 빛으로...

uriul 2026.01.13 21:58 조회 수 : 41

새벽 유달산, 어둠에서 빛으로

 

작성자:이재옥

 

2026년 1월 4일 새벽 5시, h와 함께 목포 유달산에 올랐다. 숙소에서 산 입구까지는 걸어서 30여 분.
아직 도시가 완전히 잠들어 있는 시간이라 거리에는 인기척이 거의 없었고, 공기는 차갑고 맑았다.
이번 산행의 목적은 유달산 마애불,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흥법대사상과 부동명왕상 마애불을 직접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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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 초입에는 오포대 안내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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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포는 '정오포'라고도 불리는데, 1908년 4월 1일 일본 통감부가 한국과 일본의 1시간 시차를 무시하고 일본 시간 정오에 맞춰 포를 쏘아 시간을 알리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시간마저도 우리의 것이 아니었던 시절의 단면이, 새벽 공기 속에서 유난히 선명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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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포대에서 잠시 쉬며 내려다보니 빼곡한 건물들의 불빛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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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적봉이 저기 있었구나. 어둠 속에서는 스쳐 지나왔던 풍경들이 내려다보는 순간에야 제자리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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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에는 자랑스러운 유물도 있다.
천자총통은 1555년 을묘왜란이 있던 해, 명종 10년에 제작된 것으로 명문이 남아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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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작된 총통 가운데 가장 큰 규모라니, 실제 전투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지 상상해 본다.
명문은 어디에 새겨져 있을까 내려오면서 다시 살펴봐야겠다고 마음에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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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오르는 듯한 돌 난간석을 따라 걷다 보면 이곳이 혹시 산성이었을까 잠시 생각하게 된다.

 

 

탐방로와 조명은 잘 정비되어 있지만, 중간중간 어두운 구간도 있고 전날 내린 눈이 얼어 빙판이 된 곳도 많다. 문화유산답사회 '우리얼'_사진_20260108_10.jpg

 

몇 번 미끄러질 뻔한 뒤로는 난간을 꼭 잡고 자동으로 속도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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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운행 전인 해상케이블카의 캐빈이 어둠 속에서 가만히 매달려 있다. 언젠가 저 안에 올라 바다 위를 건너는 날도 오겠지, 막연한 기대를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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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을 등불 삼아 한 시간 남짓 올라 마당바위가 있는 정상부 데크에 닿는다. 이곳에서 일등바위를 바라보면 바위 절벽에 새겨진 두 조각상을 가장 잘 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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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법대사상, 그리고 부동명왕상.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유달산 바위 곳곳에 그들이 숭배하던 불상을 안치했다.
부동명왕은 모든 악마와 번뇌를 항복시키는 분노의 형상으로 철퇴를 들고 있고, 흥법대사 공해는 일본 진언종의 시조로,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부동명왕의 가호를 받았다는 전설로 인해 두 존재는 늘 함꼐 등장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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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벽 어둠 속에서는 그 형상이 또렷하지 않다. 날이 밝아지기를 기다려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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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아래로 펼쳐진 다도해와 고하도, 그리고 고하도와 목포를 잇는 목포대교를 바라본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 덕분에 산꼭대기인데도 생각보다 춥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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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국수를 먹게 될 줄은 몰랐지만, 따듯한 국물 한 그릇이 새벽 산행의 긴장을 풀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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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찍은 사진 속 국수 뒤로 일등바위가 배경처럼 걸린 것도 묘한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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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도 조각상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너무 일찍 온 걸까. h의 눈치도 보이고 오전 일정도 있어
더 버티자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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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만족해야 하나 싶던 찰나, 문득 일등바위에 있어야 할 흥법대사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자주 이곳을 오르내린다는 현지인에게 물어보아도 그런 게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답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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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바위 아래로 내려다보이던 좁은 샛길을 따라 내려가 보기로 한다. 마음은 급하지만 길은 빙판이라 걸음은 자연스레 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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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 하나 없는 갈림길 끝,
잡목들이 우거지고 그늘이 깊어 조금 무섭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작은 공간에서 흥법대사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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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말, 일본 진언종이 목포에 유입되면서 유달산 노적봉에서 일등바위까지 이어지는 길목에 88 영장 순례가 만들어졌다. 유달산 아래에서 살고 있던 진언종 신자가 만들었다고 한다.
시고쿠의 88사 순례 축소판을 유달산에 재현한 것인데 순례코스의 마지막 도착지가 이곳 흥법대사였다.

해방 이후 대부분 철거되었지만 일등바위의 흥법대사상과 부동명왕상은 반면교사로 남겨졌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시간이라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사진 속에서는 윤곽이 그나마 드러난다.
아쉬움을 안은 채, 그래도 이만큼 볼 수 있었음을 스스로 달래며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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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법대사상에서 나와 소요정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여기서 h와 헤어져 각자의 길로 간다. 나는 유달산 마애불을 보기 위해 혼자 걷기로 했다. 얕은 단화로 빙판길을 걷는 일은 생각보다 끼다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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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위만 보이면 혹시 마애불인가 싶어 휴대폰으로 비춰 보기를 반복하다가, 의외로 눈에 잘 띄는 자리에서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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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을 쓴 머리와 사실적인 얼굴 표현, 세 줄로 새긴 삼도, 오른손에 쥔 작은 구슬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묘하게 따뜻하게 느껴진다.
일본 불상에 맞서 조선인들의 마음을 달랬을 위로가 바로 이런 모습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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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아지자 흥법대사상과 부동명왕상을 재 확인 하고 싶어졌다.서둘러 왔던 길을 되짚어 나간다.

시간에 쫓겨 발걸음이 빨라지지만 눈길이라 주의는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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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 흥법대사상은 채색이 되어 있었다. 양각으로 도드라진 형상이 또렷했으며 자세는 근엄하고 당당했다.
잘 조각된 마애불이다. 그러나 '미운 일본'이라는 나믜 평소 감정 때문인 지 마음까지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반면 유달산 마애불은 평평한 바위를 파낸 음각으로 새겼다. 형형색색으로 힘을 쓰지 않았고 곁에 부동명왕 같은 보디가드도 없다.
일본 불상이 위엄으로 앉아 있다면 유달산 마애불은 말없이 곁에 서 있는 느낌이다. 바위에 스며든 얼굴 하나가 사람을 오래 붙잡는 이유를 지금은 알 것 같다.
"잘 만든 것"과 "곁에 있는 것"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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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음으로 빛이 바뀐 순간에 마주한 부동명왕상은 어둠 속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리 철퇴를 든 분노의 형상이 또렷하다.

괜히 근처에서 함부로 어정거리다가는 정신 차리기도 전에 혼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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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자 했던 것들은 모두 보았다.
이제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올라올 때는 목적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서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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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의 매력 중 하나는 공중에 떠 있는 해상케이블카의 풍경도 한몫할 것이다. 목포 시가지를 돌아다니는 이틀 동안 붉은 케이블카가 산과 바다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지면서도 도시 전체에 활력을 더해 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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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행의 매력은 역시 눈 덮인 풍경이지만, 방심하면 미끄러지기 쉽다. 실제로 내려오는 길에서 넘어지는 사람을 몇 명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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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떠오른다. 두꺼운 구름에 가려 빛은 흐릿하지만, 어쨌든 2026년 두 번째 일출을 유달산에서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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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괴석들도 내려오며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종바위, 고래바위. 애기 바위, 산길 곳곳에 이런 요소들이 있어 유달산은 쉽게 지루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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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천자총통 앞에서도 명문은 끝내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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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노래비에서는 '목포의 눈물'이 흐른다.
애닮은 가락이 이 산의 정서와 묘하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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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서니, 나라를 생각하며 견뎌냈을 그의 시간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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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곁에는 겨울에도 꽃을 달고 있는 동백이 피어 있다.
분홍빛 꽃잎이 발길을 오래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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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의 쥐바위는 노적봉을 노리는 형국이라 이름 붙었다는데, 풍수와 설화가 겹쳐진 이런 이야기들도 이 산을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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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는 바다가 아니라 항구다!
짧지만 강렬한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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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적봉은 임진왜란 당시 볏짚으로 바위를 덮어 군량미가 쌓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지혜 하나가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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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내려오며 모두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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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적봉 뒤편 바위에는 일제강점기 쇠말뚝 흔적이 남아 있다.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박았다는 이야기는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고도 하는데.. 믿어야 할까, 의심해야 할까. 바위에 남은 구멍들을 보고 있자니 내 몸 어딘가에 쇠가 박힌 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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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228m의 낮은 산이지만, 유달산은 목포의 풍경과 역사, 그리고 지금의 시간을 한꺼번에 품고 있다.

새벽 어둠에서 시작해 빛으로 내려오는 이 길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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